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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던 순간들이 있다. 언어를 초월한 감정의 교류, 낯선 이와 나눈 따뜻한 공감의 장면을 되돌아본다.

 

현지인의 웃음이 집 같았던 순간 마음의 언어는 통했다

1. 언어 없는 대화, 진심은 손짓으로 전해졌다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일은 누구에게나 불안한 순간이다. 특히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그 불안이 더 커진다. 몇 해 전, 나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전철이 끊긴 늦은 밤을 맞이했다. 스마트폰은 로밍이 안 되고, 간이역 주변엔 사람도 드물었다. 터덜터덜 걸으며 숙소를 찾아 헤매던 그때, 편의점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미리 캡처해 둔 숙소 주소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줬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익숙하지 않은 골목을 따라 몇 분 걷고,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며 그는 나를 돌아보아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 '이제 곧 도착할 거란'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말은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지만, 나는 그와 함께 걷는 동안 누구보다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숙소 문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고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감사 인사를 전했고, 그 역시 조용히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그것으로 모든 감정의 교환은 끝이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깨달았다. 언어가 없어도 진심은 손짓 하나, 눈빛 하나로 충분히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 침묵은 더 진하게 마음을 나누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지금도 누군가 낯선 이를 도울 수 있는 용기를 생각나게 한다.

2. 서로의 말은 몰라도, 웃음은 하나였다

한국에서 열린 한 국제 자원봉사 행사에 참여했을 때였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작은 지역 마을을 함께 돌며 환경 정화와 아이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활동이었다. 처음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국적도,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공통 언어는 '미소'였다. 말로는 길게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마음이 오갔다.

 

쓰레기를 줍고, 정원을 손질하고, 벽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동작을 따라 하며 함께 리듬을 맞춰갔다. 말 대신 몸짓, 표정, 손동작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점심시간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시락을 나눠 먹고, 손으로 '맛있다'라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익숙하지 않은 반찬에 웃으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이야기였다. 통역기도 없이, 우리는 하루하루를 함께 만들어가며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날 아이들과 함께 했던 놀이 시간이었다. 언어가 안 되는 외국인 자원봉사자를 향해 아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놀기 시작했다. 줄넘기를 하고, 손뼉 치기 게임을 하며 아이들은 웃음으로 친구가 되었고, 자원봉사자들은 어느새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그날의 공기는 정말 따뜻했고, 끝내 헤어질 땐 모두가 아쉬움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언어가 아닌, 웃음과 행동이 우리를 하나로 묶었다. 말은 몰라도, 우리는 친구였다.

3. 마음의 언어는, 침묵 속에서 더 크게 울린다

가장 진한 감정은 종종 말이 없는 순간에 발생한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것, 아무 말 없이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 그런 순간들은 언어보다 훨씬 더 큰 위로가 된다. 나는 한 장례식장에서 그걸 절실히 느꼈다. 가까운 지인을 떠나보내고 혼자 울고 있던 나에게, 오래전 교환학생으로 만났던 일본인 친구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는 한국어를 거의 못 했고, 나는 일본어를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우리는 그냥 마주 앉아 있었다.

 

그 친구는 종이 한 장에 짧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눈물 흘리는 사람 옆에 작게 핀 꽃 한 송이. 아무 말 없이 그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울면서도 웃었고, 그 순간만큼은 정말 마음이 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의 깊이를 함께 걸어주고 있었다. 그 장면은 수많은 위로의 말보다 더 깊고 선명하게 남았다. 결국 우리는 말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마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마음의 언어는 번역이 필요 없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은 침묵 속에서도 전해진다. 오히려 말을 붙이는 순간 그 온도가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말보다 중요한 건, 들으려는 태도와 느끼려는 자세다. 상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도, 그 표정 속 불안을 알아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연결된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통했던 마음, 그것은 언어가 아닌 인간성의 본능이 전한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 감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