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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머물렀던 기차역에서의 풍경, 감정, 만남을 통해 스쳐 가는 사람들 속 나를 되돌아본 에세이입니다.

     

    하루 종일 머물렀던 기차역에서의 풍경, 감정, 만남, 이별 연습

     

     

    1. 멈춰 선 시간 속, 스스로를 마주하는 장소

    기차역은 보통 ‘잠시 머무는 곳’이다. 목적지가 아니며, 도착지와 출발지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하루 종일 기차역에 머물게 되었다. 이유 있는 목적도 없었고, 누굴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날은 ‘어딘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고, 마음이 복잡했던 나에게 기차역은 오히려 가장 안전한 피난처처럼 느껴졌다. 플랫폼 위에서 바라본 시계는 이상하게도 느리게 흘렀다. 분명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한 시간이 흐른 듯한 정적. 사람들은 분주하게 지나갔고, 나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어디로 가는 열차가 아니라, 잠시 멈춤이 아닐까?" 그렇게 멈춰 선 기차역은, 나를 위한 거대한 정지 버튼이 되었다.기차역이라는 공간의 특성 때문일까, 이곳은 모든 감정이 정직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다. 작별 인사 속의 눈물, 재회의 포옹, 그리고 지연된 열차에 대한 짜증까지.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나도 모르게 감정을 투사하게 되었고,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장면들이 깊이 각인되었다.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기차역에 머문 하루’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주었다. 어쩌면 바쁘게 달리던 삶의 레일 위에서 잠시 내린 것이, 내게 필요한 쉼표였는지도 모른다. 기차가 달리는 것만이 삶의 방향은 아니니까. 어떤 날은 멈춰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더 깊은 여정을 시작하는 방법일 수 있다.

    2. 스쳐가는 얼굴들 사이, 나를 되짚는 순간들

    기차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들 각각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금방 흘러갔다. 출장을 떠나는 듯한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 졸업식 꽃다발을 든 소녀,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통화를 하던 젊은 여성. 그들의 걸음과 눈빛, 손에 든 짐 하나하나가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기차역에 앉아 사람을 관찰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돌아보는 작업이었다. ‘나는 저들처럼 바삐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까?’, ‘내가 들고 있는 짐은 무게에 비해 너무 작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 속에서 나는 평소엔 놓쳤던 나의 표정, 나의 걸음걸이, 나의 불안과 안도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옆에서 어머니가 토닥이던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내 시선을 붙들었다. 아이가 그토록 슬퍼하던 이유는 기차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아이에게서 나 자신을 보았다. 방향을 잃거나, 속도를 놓쳤다고 느껴진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고, 그때마다 나도 그렇게 울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기차역은 누군가에겐 이별의 공간이었고,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의 장소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감정이 겹겹이 쌓이는 미지의 거울 같았다.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나의 모습을 찾았고, 그 속에서 가장 나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니 기차역은 단순히 사람들이 오가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스스로를 비추는 감정의 플랫폼이기도 했다.

    3. 목적 없는 하루가 전해준 묵직한 메시지

    기차역에서 보낸 하루는, 어느 여행지보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동하지 않았음에도 뭔가를 ‘도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야만 의미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날 나는 머무름 속에서도 배움과 울림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 노인이 플랫폼 끝에 앉아 도시락을 드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작은 김밥 한 줄을 사서 벤치에 앉아 먹었다. 특별할 것 없는 식사였지만, 오랜만에 ‘맛’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빠르게 먹고 이동해야 했던 그동안의 식사와 달리, 이곳에서는 한 입 한 입에 여유가 담겼다. 열차가 지연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불평을 쏟아냈지만, 나는 그 지연이 오히려 하루를 더 길게 느끼게 해 주었다. 삶이란 게 어쩌면 그렇게 ‘지연된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지도 모른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기다림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더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 기차역에 머무는 하루는 결국 나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살아보라’는 메시지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불안했던 시간, 그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역의 한복판에서 나는 나 자신과 조우했다. 가끔은 어디로도 가지 않아야, 가장 먼 곳까지 갈 수 있다는 진리를.

    4. 멀어지는 열차를 바라보며 배운 이별의 연습

    하루 종일 머물렀던 기차역에서 가장 많이 마주친 장면은 ‘이별’이었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울음을 참았다. 타는 사람이든 남는 사람이든, 그 작별의 순간엔 항상 어떤 여운이 남았다. 처음엔 그 장면들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것이 너무도 익숙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이별을 겪지만, 정작 우리는 이별을 잘 배운 적이 없다. 기차역은 그런 우리에게, 매일 이별을 연습시키는 공간 같았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승강장 끝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급히 손을 흔드는 사람, 창밖을 향해 웃음과 눈물을 함께 보이는 사람,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는 사람까지. 그날 나는 다양한 이별의 얼굴을 보았다. 어떤 이별은 아프고, 어떤 이별은 담담했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겪어온 모든 이별을 떠올렸다. 끝맺음을 말하지 못한 이별, 오랜 시간 미뤘던 이별, 그리고 마음으로만 했던 이별들. 기차역의 이별은 물리적으로 분명하다. 열차가 떠나면 더는 붙잡을 수 없다.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이 시스템은 냉정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단호하고 선명한 작별의 방식을 가르쳐준다. 언젠가 나도 그런 이별을 해본 적이 있다.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급류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았던 순간들. 그때는 왜 그렇게 아팠는지 몰랐는데, 이곳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장면을 보니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별이란 단지 떠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겨지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 크다는 것을.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 사람이 그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 웃으며 보내는 사람이 오히려 더 아플 수 있다는 사실. 그건 어쩌면 기차역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