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하나의 노래가 여행 전체를 담아내는 경우가 있다. 낯선 길 위에서 반복된 멜로디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속 풍경으로 남는다.
1. 비행기에서 처음 들은 그 멜로디, 시작점에 남겨진 감정의 흔적
여행을 떠날 때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작은 의식을 갖는다. 누군가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여행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스탬프를 찍는 공항의 풍경에서 여행의 실감을 느낀다. 나에게는 그 시작이 한 곡의 노래였다. 이번 여행은 오래도록 기다려온 나만의 휴식이었고, 탑승 게이트에서 무심코 재생된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이었던 적재의 ‘별 보러 가자’는 그 모든 순간을 조용히 관통했다. 처음에는 그냥 배경음이었다. 하지만 그 노래는 이내 하나의 기억 장치처럼 내 마음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륙과 동시에 흐르던 그 기타 선율과 조용한 목소리는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눈앞에 펼쳐진 구름과 높이 솟은 태양, 그리고 새벽처럼 맑은 공기 사이에서 나는 어떤 시작점에 서 있다는 감각을 얻었다. 단지 여행지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안도감. 그때부터 ‘별 보러 가자’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여행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일’ 임을 상기시키는 일종의 신호처럼 작용했다. 노래는 반복해서 들을수록 감정을 덧입는다. 이후 여행을 이어가며 버스를 탈 때, 산책길을 걸을 때, 숙소 창가에 앉아 있을 때마다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그때마다 처음 비행기에서 느꼈던 설렘이 떠올랐고, 낯선 도시에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는 그 감정이 나를 따뜻하게 감쌌다. 멜로디는 점점 공간과 상황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변했고, 나의 기분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알게 됐다. 하나의 노래는 여행의 시작이자 중심이며, 끝으로 연결되는 끈이라는 것을.
2. 익숙한 노래가 낯선 도시에서 들릴 때의 낯섦과 위로
여행 중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올 때가 있다. 현지 카페 스피커에서, 거리의 악사 기타 줄에서, 혹은 숙소 로비에서 흘러나오는 우리말의 선율은 마음을 조용히 뒤흔든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 자주 들었던 노래, 이제는 몇 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국의 땅에서도 울려 퍼질 때, 그 낯섦 속의 친숙함이 얼마나 묘한 감정을 주는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게 그랬던 곡이 바로 ‘별 보러 가자’였다. 여행 중 들른 어느 작은 갤러리 겸 북카페. 비 오는 오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림책을 넘기던 그 조용한 공간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내 착각인가 싶었지만, 이내 확신이 들었다. 익숙한 가사, 조용히 낮게 깔리는 음성. 나는 책장을 덮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고향의 공기 한 줌이 내 옆으로 다가온 것 같은 위로. 물리적 거리와는 다르게 마음은 순식간에 원점으로 회귀했다. 그 순간 나는 음악이 가진 진짜 힘을 실감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익숙한 멜로디 하나가 나를 설명하고, 나를 보호하고, 나를 잠시 안식시키는 존재가 되어주었다. 노래는 감정의 그릇이다. 그것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 사람, 온도, 표정은 결국 우리의 기억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 만난 이 노래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않도록 해주는 장치이기도 했다.‘별 보러 가자’는 그 순간 이후 더 이상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여행 중 가장 외로웠던 순간을 이겨낸 음악이 되었고, 멀리서도 나를 품어준 목소리로 남았다. 낯선 도시의 공기 속에서 들은 그 노래는, 오히려 내 안의 익숙함을 일깨워주었다.
3. 돌아오는 길에 남겨진 노래, 시간과 풍경을 간직하는 멜로디
여행의 끝은 언제나 조금 쓸쓸하다. 처음의 설렘이 무뎌지고, 새로운 풍경이 익숙해질 즈음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그 돌아오는 길에 남겨지는 것은 단지 사진이나 기념품만이 아니다. 머릿속을 맴도는 노래 한 곡, 그것이야말로 여행 전체를 요약해 주는 가장 진한 흔적이다. 내가 들었던 ‘별 보러 가자’는 비행기 창가에서 시작되어, 거리 곳곳을 배경으로 흐르다가, 다시 귀국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으로 나를 감쌌다.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다시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단숨에 여행의 모든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공항의 첫 입구, 현지의 따뜻한 인사, 작은 식당에서의 웃음, 그리고 비 오는 날의 카페까지. 노래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풍경을 저장하는 감정의 기록이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알게 되었다. 여행이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래로 계속된다는 사실을. 이후로도 나는 일상 속에서 종종 그 노래를 듣는다. 무심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잠들기 전 이어폰을 끼고 있을 때, 혹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멍하니 있을 때. 그 노래가 다시 들릴 때마다 마음속에 조용한 여행이 시작된다. 현실의 공간은 변하지 않았지만, 음악이 이끄는 마음의 여행은 늘 새롭다. 그래서 노래는 가장 오래된 지도다. 장소와 시간, 감정과 기억이 한 데 엮여있는 감각의 지도.‘여행 내내 따라다닌 노래 한 곡’은 결국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우리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길 위의 침묵을 담으며,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풍경을 안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할 때, 나는 다시 그 노래를 재생할 것이다. 과거의 길과 미래의 길을 잇는 다리처럼, 음악은 늘 나보다 먼저 길을 떠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