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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낯선 곳에서 문득 돌아가고 싶지 않아 졌다. 마지막 날이 오히려 시작처럼 느껴졌던, 마음이 붙잡힌 그 순간을 이야기한다.

     

     

    돌아가기 싫어졌던 그 마지막 날, 낯선 곳에서 마음이 머문 순간

    처음은 설렘, 마지막은 미련으로 남는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기대와 들뜸으로 가득하다. 익숙하지 않은 골목, 낯선 음식 냄새, 새로운 얼굴들. 모든 것이 특별해 보이고, 모든 장면이 한 장의 사진처럼 새겨진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새 마지막 날이 찾아온다. 그런데 유독 그 마지막 날,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짐을 싸는 손이 느려지고, 익숙하지 않았던 거리가 이제는 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저 다녀오는 일정이었을 뿐이었다. 일정표에 적힌 관광지와 맛집을 돌아다니고, SNS에 올릴 사진을 찍으며 익숙한 여행자의 모습을 따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 동네의 공기, 식당 아주머니의 말투, 카페 창가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하루를 채우는 배경이 된다. 그러다 마지막 날이 되면, 내가 잠시 머물렀던 이곳이 단순한 목적지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공간이 되어버린다. 돌아간다는 건 현실로 돌아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다시 반복되는 일상, 사람들의 기대, 책임감과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그래서인지 낯선 땅의 마지막 아침은 유독 천천히 움직이고 싶어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그냥 이곳에 더 있고 싶은 마음.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짙은 감정을 남기는 이유는, 그 사이에 ‘정들어버린 나’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결국 끝나기 위해 시작되는 것이지만, 때로는 끝이라는 말보다 ‘남아있고 싶다’는 감정이 더 정직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 돌아가기 싫어졌던 그 마음은 여행이 주는 가장 인간적인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별이라는 말보다 조용히 남는 감정들

    마지막 날은 언제나 감정이 많다. 감정이라는 건 언제나 예고 없이 밀려오고, 특히 익숙해진 것을 떠나는 순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함으로 마음을 채운다. 낯선 곳에서의 며칠이 어떻게 이렇게 깊은 감정을 만들어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마음 한구석이 시리도록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이별이 시작되는 걸까. 숙소 문을 닫는 순간일까, 마지막으로 걷던 거리에서 발걸음을 멈췄을 때일까. 아니면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창밖만 바라볼 때일까. 어쩌면 이별은 그보다 더 일찍, 마음이 그곳에 닿았을 때 이미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 혹은 어떤 장소에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부터 그곳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우리는 그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 이곳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왜 이 공간에서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흘렀는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놓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찬찬히 돌아보게 되는 것도 이 시점이다. 감정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고, 오히려 말이 없는 순간에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조용하다. 바쁘게 사진을 찍던 여행자도, 빠르게 다니던 골목도 조용하다. 감정은 소리보다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 조용한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그때 그 카페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골목 사진 하나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이별은 기억으로 이어지고, 기억은 결국 또다시 그리움을 만든다. 돌아가기 싫어졌던 마지막 날은, 그렇게 내 삶 어딘가에서 계속 머무는 중이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남고 싶은 마음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에는 사실 수많은 감정이 겹쳐 있다. 그 말은 단지 현실이 싫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공간이 내 마음을 얼마나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지를 말하는 고백에 가깝다. 다시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여기에 남으려 한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진심에서 오는 머뭇거림이다. 그곳에서의 마지막 아침은 유난히 모든 것이 또렷해 보인다. 평소엔 지나쳤던 벽돌의 색, 계단의 모서리, 가게 앞 화분의 움직임까지도. 모든 것이 “잘 가”라고 말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또 올 거지?”라고 묻는 것 같다. 여행자의 시선은 마지막 날이 되어야 비로소 진짜 ‘생활자의 감각’에 가까워진다. 그제야 공간은 장소가 되고, 장소는 기억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남을 수는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돌아가야 할 곳에는 누군가의 기다림, 감당해야 할 책임,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있다. 하지만 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잠깐이었지만 깊은 사랑을 했던 것처럼, 우리는 잠시 머문 곳에서 깊은 애정을 느꼈고, 그것은 오래도록 우리 안에 남는다. 결국 돌아가는 것은 몸이지, 마음은 그곳에 잠시 더 머물러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가겠지만, 어느 날 불현듯 그 마지막 날의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 문득 또다시 그곳이 그리워지고, 또 다른 여정을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마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조용한 다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