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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진실했던 식사를 통해 음식 이상의 감정과 기억, 그리고 사람 사이의 연결을 되돌아보는 깊은 에세이입니다.

 

 

가장 진실했던 식사는 허기보다 진심이 먼저였다

1. 허기보다 진심이 먼저였던 그날의 밥상

그날의 식사는 배가 고파서 먹은 밥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고픔은 둘째 치고라도 마음이 먼저 허기졌던 날이었다. 사람에 지치고, 말에 상처받고, 하루의 끝자락에서 나 자신조차 위로할 수 없던 그런 저녁. 누군가와의 약속도 없었고, 따뜻한 한 끼를 해먹을 의지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라도 사 먹을까 망설이던 그때, 오래전 인연에게 연락이 왔다. "밥 먹었어? 같이 먹을래?"큰 기대 없이 향한 그 집에서, 나는 오래된 찬장 문을 열 듯 조심스럽게 식탁 앞에 앉았다. 상 위에는 화려한 음식이 놓여 있지 않았다. 두부조림, 시래깃국, 잘게 썬 김치와 고슬고슬한 밥. 소박하고 조용한 구성. 그런데 희한하게도 숟가락을 들기 전부터 마음이 놓였다. 그 집주인은 식사를 준비하며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몰라서, 자극적인 건 피했어”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가 그날 내가 받은 어떤 위로보다도 깊었다. 식사를 시작하며 나는 거의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조차 허용되는 자리였다. 상대는 억지로 내 기분을 끌어내려하지 않았고, 대신 반찬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흔적이 눈에 띄었다. 두부는 눌지 않게 천천히 익혔고, 국은 짜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음식을 만든 사람이 나를 생각하며 재료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날의 식사는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존중받는 경험이었고, 말 없는 공감의 시간이었다. 허기보다 진심이 먼저 채워졌던 식탁. 나는 그날 처음으로 ‘진실한 식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건 재료나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함께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2. 말보다 따뜻했던 숟가락의 온기

우리는 종종 좋은 식사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나 ‘고급 식자재’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식사는 대부분 그런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나에게 그랬던 식사도 그랬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물러난 작은 부엌, 아무도 꾸미지 않은 말투, 그리고 따뜻한 밥 한 공기. 그 식사는 마치 나에게 “이제 좀 울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 자리에서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오기 전,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김부터가 이미 위로였다. 오랫동안 묵혀둔 감정들이 밥공기 위에서 서서히 녹아내렸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말이 아닌, 그저 나의 상태를 그대로 인정받는 순간. 나는 몇 년 만에 진심으로 천천히 밥을 씹었다. 급하지도, 무례하지도 않게. 숟가락에 담긴 건 쌀알이 아니라, 말로 다하지 못한 위안이었다. 식사를 함께한 이는 조용히 내 숟가락 속도를 따라주었다. 때때로 고요한 웃음, 때때로 짧은 맞장구. 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정적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적 덕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고를 수 있었고, 어떤 말은 하지 않아도 이미 전달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음식은 입에 머물렀다가, 마음으로 삼켜졌다. 그날의 숟가락은 누군가의 배려와 감정을 옮기는 도구였다. 나는 먹는 행위를 통해 다시 숨을 쉬었다. 그렇게 한 끼 식사는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고, 그 온기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머물렀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잊히지만, 그날의 숟가락 온기는 가슴 한구석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진심은 말보다, 눈빛보다, 음식의 온기 속에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3.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식탁의 온도

진실한 식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같은 사람, 같은 음식, 같은 장소일지라도 그날의 마음과 시간은 단 한 번뿐이다. 그래서일까. 그날의 식사는 지나고 나서야 더 선명해졌다. 어쩌면 우리는 늘 지나고 나서야 어떤 시간이 ‘진짜였는지’를 알아차리게 되는지도 모른다.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설거지를 함께했다. 그 조차도 마치 하나의 의식 같았다. 그릇을 닦으며 작은 웃음이 오갔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해가 공기 중에 감돌았다. 나는 그 식탁에서 내 삶의 방향을 다시 그려보게 되었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살아가야 할지. 시간이 흐르고, 나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람들과의 식사는 다시 겉도는 대화로 채워졌고,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마음은 다른 곳을 향했다. 하지만 그날의 식사는 내 안에 살아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등불처럼, 그 기억은 때때로 나를 멈추게 만들고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때로 외식이나 이벤트 같은 특별함을 통해 추억을 만들려 하지만, 가장 깊은 기억은 오히려 조용하고 소박한 식탁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날처럼. 진실한 식사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교환이며, 삶의 일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날의 식탁. 나는 여전히 그 자리를 기억한다. 식탁 너머의 표정, 그릇에 담긴 마음,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건네주던 반찬 하나까지.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진실했던 식사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식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나는 스스로에게 다정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