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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로 가득한 도심 속에서도 홀로였던 그날, 가장 쓸쓸했던 여행의 하루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외로움 속에서 스친 감정들을 되짚어본다.

     

    가장 쓸쓸했던 여행의 하루,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내 마음의 그림자

    북적이는 거리, 혼자라는 감정은 더 깊어졌다

    여행지의 거리는 늘 활기로 넘쳤다. 사람들은 손에 지도를 들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고, 커플들은 웃으며 셀카를 찍고, 가족 단위의 관광객은 소리 높여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 장면들이 가득한 길 위에서, 나는 오히려 더 고요했다. 아니, 고요했다기보다는 고립되어 있었다. 누구의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내게 닿지 않았다. 혼자 하는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한 여정이었고, 자유롭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비가 오지도 않았고, 날씨가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이 자꾸만 젖어갔다. 아마도 어떤 기대가 무너진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함께 걷기로 했던 사람이 오지 못했고, 보고 싶던 사람과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가 통째로 비워진 느낌이었다. 사람 사이에서 혼자가 되는 건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곳에 있을 땐 덜 외롭다. 북적이는 거리에서, 수많은 발걸음 사이를 뚫고 홀로 걷는 그 느낌은 나를 무너지게 했다. 사람 냄새와 음식 냄새, 음악 소리까지 분명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모두 낯설게만 느껴졌다.

    카페 창가에 앉아, 흘러가는 하루를 바라보다

    그날 오후,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압박도 없이 나는 한적한 골목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여행책에서 본 적 없는 장소였다. 관광명소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은 동네였다. 오히려 그런 곳이 좋았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나도 누구를 신경 쓸 필요 없는 곳. 창가 자리,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멍하니 흐르는 사람들의 뒷모습. 바쁜 걸음으로 스쳐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완전히 정지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은 때로 사람을 마주하게 만든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 얼굴을 제대로 바라본 것 같았다. 일상 속에서는 감춰두었던, 작은 상처와 무너진 기대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왜 이렇게 외롭지? 왜 나는 지금 여기에 있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가 들으면 괜한 감상이라 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날의 고요는 내 안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깊고 또렷했다. 혼자라는 사실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나조차도 위로할 수 없다는 느낌이 버거웠다.

    쓸쓸했던 그 하루는, 결국 나를 알아보게 만든 시간

    여행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기억은 대개 특별한 장소도, 화려한 경험도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가 비어 있던 순간, 감정의 틈새에서 마주한 ‘나’라는 사람이다. 쓸쓸했던 그날이 지금까지도 선명한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어떤 역할도, 어떤 가면도 없이 진짜 내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길고 느렸다. 발걸음이 무겁고, 주변 풍경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꺼내놓은 느낌 때문일까. 말할 상대가 없으니 마음속으로 중얼거렸고, 아무도 듣지 않으니 오히려 솔직할 수 있었다. 그 고백들이 묘한 해방감을 줬다. 지금은 가끔 그 하루를 떠올린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 하루가 있었기에 너는 더 단단해졌다.” 혼자라서 외로웠던 것이 아니라, 비로소 진짜 감정을 마주한 날이었기에 쓸쓸했던 거라고. 그 하루는 내 여행 중 가장 조용했고, 가장 의미 깊은 하루였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쓸쓸한 여행을 하고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 감정은 흘러갈 거라고. 그날은 오래 남을 거라고. 그러니 마음껏 느끼고,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