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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처음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낯선 음식.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음식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단지 맛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의 기억 때문이었다.
1. 입에 넣자마자 멈췄던 그 순간
여행지에서 처음 마주한 음식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식욕은 없지 않았고, 배는 분명 고팠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그 음식은 내 미각의 기억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향, 무언가 부조화스럽게 느껴지는 색감, 뜨거운 김 속에 섞여 나오는 이질적인 향신료 냄새까지. 처음엔 용기보단 호기심으로 한 숟갈을 떴고, 곧바로 입안이 멈췄다. 단맛도, 짠맛도 아닌 익숙하지 않은 감각. 오묘했고, 이해되지 않았고, 낯설었다.
그때 함께 있던 현지인은 웃으며 말했다. “처음엔 다 그래요. 두 번쯤 먹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나는 웃어넘겼지만 마음속으론 ‘내가 과연 이걸 다시 먹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는 길, 배는 채워졌지만 마음은 어딘가 비어 있었다. 마치 문화와 문화 사이에 놓인 경계에 선 느낌. 그 음식은 단지 음식이 아니었다. 나와 낯선 세상을 잇는 첫 번째 접촉이자, 동시에 가장 큰 간극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간극 속에서, 나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기에 오래 남고, 낯설기에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긴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맛, 향, 온도까지도 내 안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미각의 경험이 아닌, 그 순간 내가 느낀 모든 감각과 감정이 결합된 기억의 캡슐이었다. 아무리 낯설었어도, 그것은 내가 가장 처음으로 ‘다른 세계’와 부딪혔던 특별한 장면이었다.
2. 낯설었던 맛이 다시 떠오른 어느 평범한 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일상은 다시 익숙함으로 채워졌다. 아침엔 늘 마시던 커피, 점심엔 흔한 김치찌개, 저녁엔 익숙한 배달 음식들. 처음엔 반가웠다. 익숙한 음식의 위안, 예측 가능한 맛의 안정감.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느 날 문득 이상한 감정이 찾아왔다. 이유 없이 머릿속을 스친 그 음식. 그때, 낯선 골목에서 먹었던 바로 그 음식이었다.
그 맛이 특별히 맛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입에 맞지 않았고, 먹는 내내 조금은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그 음식이 그리워졌다. 마치 그 맛을 통해 어떤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듯한 감정이었다. ‘왜 하필 그 음식일까?’라는 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답은 명확했다. 그 음식은 내게 ‘여행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떠올릴 때, 실은 그 맛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 음식을 먹었던 공간, 함께 있던 사람, 풍경, 냄새, 기분… 모든 것이 그 음식과 함께 저장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음식이 다시 떠오른다는 건, 단지 혀가 그 맛을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그때의 순간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그 음식의 이름을 찾아보았고, 가까운 해외 식당을 검색해 봤다. 정확히 같은 재료와 조리법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향신료가 섞인 요리를 주문해 보았다. 그리고 그 한 입에서, 다시 그 도시의 공기와 색, 여행자의 나를 만났다. 낯설었던 음식이 다시 찾아온 건, 내 안에 그 여행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3. 음식이 아닌 기억이 그리운 순간
결국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이 품고 있는 ‘기억’이다. 처음엔 입에 맞지 않던 그 요리를 다시 떠올릴 때, 우리는 단지 맛이 아닌 ‘경험’을 되새긴다. 낯선 테이블에 앉아 낯선 사람과 나눈 조용한 대화, 익숙하지 않은 식기를 어색하게 들던 손끝의 긴장감,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중엔 따뜻하게 느껴졌던 음식점 주인의 미소. 그 모든 것이 다시 떠오른다.
이따금 일상 속에서 그 음식의 향과 비슷한 무언가를 맡을 때면 순간 눈이 멈춘다. 지하철역 앞 외국 음식 냄새, 마트에서 스쳐 지나간 향신료 코너, 혹은 TV 속 한 장면. 그때마다 ‘아, 그 맛’이라는 말과 함께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저릿해진다.
가장 낯설었던 음식이 다시 그리워지는 건, 그 음식이 내게 가장 솔직한 여행의 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보다도, 기념품보다도, 음식은 더 오래 기억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음식으로 세상을 처음 받아들이고, 혀로 감정을 저장하며, 몸으로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여행지에서 낯선 음식 앞에 섰을 때, 두렵기보단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그건 단지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입맛에 맞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는 그 음식이 떠오르며 다시 마음을 울릴 테니까. 그 낯섦이 그리움으로 바뀌는 날, 우리는 이미 그곳을 진짜로 경험한 여행자가 되어 있다.